18.04.26







좋은 나 싫은 나


1. 요즘은 글쓰기에 지쳤다. 그래서 글을 쓰지 않았다. 무기한 미뤄진 출판계약(계약이라고 하는 것도 이제 민망하니 앞으로는 약속 정도의 단어를 사용해야겠다)이나 일주일에 한 편씩 송고하지만 짧은 답변 한 통만 받을 뿐인(보내는 즉시 내 글은 증발되어버리고 온라인상의 그 어디에도 글이 올라오지 않는다) 이상한 시스템의 그 곳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표현하는 일에 싫증이 나기도 했다. 내가 시시한 사람일 뿐이란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2. 나는 내가 선망하는 재능들 중 어느 것 하나 가지지 못한 것 같다. 이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없는 재능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던가 아니면 내가 가진 다른 재능을 내가 원하는 바로 그 재능처럼 보이게끔 둔갑시킨다던가.. 아무튼 남을 속이고 본질을 흐려버리는 일들 뿐이다. 이 사실을 직시하니 눈 앞이 캄캄해졌다. 누군가를 모방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고, 있는 척하는 것도 이제 구질구질하게만 느껴진다. 내가 나를 속이지 못하는데 타인을 속일 수 있을리 없다.


3. 탈코르셋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사실 매일 생각한다. 탈코르셋이 어떤건지 구체적으로 정의내리기 어렵다. 그 범위에 대해 생각하는 일도 골치아프다. 그래도 생각을 멈출 순 없다. sns에 내가 페미니스트임을 공표했을 때에는 그만한 책임과 명분이 따라와야한다고 생각해서다. 일단은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탈코르셋이라 정의내리고, 차근차근 실천해보기로했다.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일들을 정리해본다.

손톱에 매니큐어가 발려져있는 상태, 악세사리 착용, 밥 먹고 지워진 립스틱 다시 바르기, 아침마다 머리 손질(고데기, 드라이), 꽉 끼는 치마 입기, 빳빳한 셔츠 입기, 뷰러와 마스카라, 화장고치기, 안경 대신 렌즈 끼기, 스타킹 신기, 브래지어, 레이스로 된 팬티 입기, 파운데이션 바르기, 하이힐 신기.

이 중 내가 계속 하고 있는 일들을 정리해보면,

아침마다 머리 손질, 화장고치기, 렌즈 끼기, 브래지어 착용, 레이스로 된 팬티입기, 파운데이션 바르기 총 6가지다.

내가 불편해하는 일 총 14가지 중 6가지만 지속하고 있으니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내 안의 코르셋은 여전히 내 숨통을 조인다. '완벽하게 꾸며진 마르고 예쁜 여성'을 볼 때 나는 숨이 막힌다. 그들의 존재와 모습 때문이 아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서 가장 억센 코르셋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 얼굴과 그 몸과 그 상태를 원한다. 내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일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한다.

인스타그램 돋보기를 눌러보며 부러워하거나 쇼핑몰 스크롤을 의미 없이 내리는 바로 이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이 때 느끼는 부러움을 자기혐오로 즉각 치환하면 안된다. '이 욕망이 스스로 구성한 욕망인지 사회적으로 강요된 가짜 욕망인지' 먼저 물어야한다. 사회가 구성한 가짜 욕망이라는 덫에 빠져 자기혐오를 하다가 끝끝내 벗어던진 코르셋을 기어코 주워입는 일이 내겐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4. 꽤 신경쓰이던 사람의 트위터 계정을 알게 됐고 죽고싶어졌다. 

18.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