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20















예경과는 대학교 1학년에 처음 만났다. 내 친구의 여자친구로 소개 받았는데, 정작 지금은 그 시절의 예경남친과는 연이 끊겼고 예경만 내 옆에 남았다.  인연이란 참 묘한 것이다. 반 년에 한 번 겨우 볼까말까한 사이지만 누름돌 얹은듯 흔들림이 없다. 그것 또한 묘한 일이다. 예경이는 보석을 탐하는 우아한 할머니로 늙을 것이 분명하고, 난 그런 예경이를 오래오래 보고싶다. 아 물론 예경이가 허락해준다면 말이다 ㅋㅋ


19.02.18



'돌봄'이 필수 전제여야만 하는 일들을 (전문적인 직업에 빗댈 정도로) '잘해내는' 부인 향한 세레나데라니. 참 구리고 구식이야.





뉴닉 구독을 시작했다. 재밌는 서비스인 것 같다. 정보를 원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정보의 유입으로 정확한 정보를 취득하기 어려울 때 또는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에 대해 여러 번 검색이 필요할 때 난감한 경우가 있었다면 추천할만한 서비스. 전문 용어도 적절한 비유+그다지 무겁지 않은 어투로 설명해준다. 그야말로 '알아서 떠먹여주는' 메일링 서비스.

손뼉치기


아무것도 하진 않지만 모든걸 하고 있는 사람처럼 힘든 일주일을 보냈다. 들떴다가 긴장했다가 꼭 딴딴튼튼이처럼 말이다. (딴딴튼튼 : 우리가 돌보는 길냥이들) 일주일 중 이틀은 ‘긴장된다’는 말만 반복하다 끝나버렸고, 그 다음 이틀은 프레젠테이션 템플릿 디자인을 신경쓰느라 날렸으니 이제 남은 3일이 관건이었다. 새로운 문장들이 자꾸 밟혔고, 보부아르의 단언 덕에 자꾸만 마음에 잡음이 생겼다. 처음 이 책을 읽던 그 때나 지금이나 이 책은 내게 힘들었다. 
해야할 일들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나는 분발해야했다. 나는 분발하고 싶을 때 미셸 르그랑의 곡을 듣는다. 무작위로 선별된 70여개의 곡을 들으며 작업을 했고,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과정상의 어려움은 예상한 것들이었고, 그 예상에 들어맞을 때 내가 할 수 있는건 작업에 더 몰두하는 것 뿐이었다. 다행히 작업은 재생목록의 모든 곡을 듣기 전에 마칠 수 있었다. 출력, 제본, 굿즈 주문 등 단순하지만 귀찮은 업무들은 일찍 마쳤으니 내 발제부분만 마무리하면 됐고, 100%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녔지만 이것까지 끝냈으니 이제 정말 순수한 초조함만 가진 채로 발을 동동 구르기만 하면 됐다. 기분 좋은 긴장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계획한대로 되는 일은 없었다.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 덕에 당일 새벽까지 핸드아웃 자료를 수정했고, 오전엔 이것들을 다시 출력해야했다. 당일까지도 여전히 준비단계에 머무르고 있단 생각이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결국 리허설에 늦었고, 조급한 마음에 허둥지둥댔다. 그러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고요하게 앉아 핸드아웃 자료 표지에 스티커를 부착했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에는 단순노동만한게 없으니까. 그리곤 발제자들과 먹을 샌드위치 6개와 관객들을 위한 물품을 빠짐없이 챙겼다. 미리 모든걸 마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공개세미나는 처음이니까 시행착오를 겪은거라 여기기로 했고 이내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가 대여한 공간은 예상 외로 찾기 어려운 곳에 위치해있었다. 다행히 사람들은 나와는 다르게 길눈이 밝은 모양이었다. 아주 늦지 않게 세미나를 시작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주었다. 그들의 반짝이는 눈이 나를 지나치게 벅차게 만든 덕에 계획보다 30분을 초과하여 발표를 했다. 완전히 혼미한 상태로 지껄였고, 미리 준비한 대본은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거나 작은 반응들을 보이며 내게 집중해주었다. 다신 없을 귀한 경험이었다. 여성학 전공자도 아닌 내가 설명하는 보부아르의 책에 대한 내용을 이토록 집중해서 들어주다니!
모든 발제자의 발표가 끝나고, 나는 마무리 멘트를 했다. 이런 기회가 생긴다면 꼭 하고 싶은 말들이었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해야할 일들이 뭔지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동력이 필요하거든요. 저는 들불을, 그리고 들불 동료들의 기운과 응원을 동력 삼아 전진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도 힘이 필요하다면 들불에 참여하세요! 많은 도움이 될거예요.’

(물론 이렇게 멋드러지게 말하진 못했다. 후기를 들어보니 의미는 잘 전달된 모양이었다.)


세미나를 마치고 조촐한 뒷풀이를 가졌다. 뒷풀이 내내 역시 세미나를 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들불 세미나에 전문성을 바라고 온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들이 아마추어라는 걸 그들도 우리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학술적인 내용만을 다루기 위해 기획한 세미나도 아니었으니 목표는 충분히 달성했다. 우린 그럼 이 뿌듯함을 연료삼아 무얼 할 수 있을까. 우린 이 다음을 생각해야했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생각하는 ‘다음’이 곧 도래할거라고, 그리고 처음보다 몇 배는 더 잘해낼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나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