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으로 문학 읽기 / 오혜진 문학연구자 - 강연후기 (1)





19. 08. 21 스틸북스 강연 후기-(1)

페미니즘으로 문학 읽기 / 오혜진 문학연구자

- '여성서사'라는 질문 : 하이틴로맨스(HR)부터 보이즈러브(BL)까지


스틸북스에서 21일 진행한 페미니즘 강연에 다녀왔다. 질의응답시간을 포함하여 총 2시간 진행 예정이던 강연은 쉬는 시간 없이 꽉 채워 진행되었다. 오혜진씨는 PPT만 무려 73장 준비해오셨다며, 서둘러 강연을 시작하셨다.


강연은 15년 신경숙 표절 사건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 사건으로 한국 문학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가 추락하고, 이후 여러 사건(강남역 살인사건과 메갈리아의 등장, 문단 내 성폭력 고발 등)으로 인해 메갈리아와 여성혐오, 젠더감수성 등의 용어들이 여성들에 의해 자주 발화되기 시작하면서 문단 내 자성과 신뢰 회복의 필요성을 주창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결과 나타난 변화로는 문예지 편집위원의 세대교체, 문예지들의 페미니즘 특집호 발간 등이 있다. 이 부분에서 강연자는 문학사에서 문예지가 '민족주의 특집' '사실주의 특집' 처럼 문예 사조 타이틀을 달고 특집호를 창간한 적이 없음에도 굳이 페미니즘만은 '특별히 지금 호명되어야 하는 흐름'으로서 그 타이틀을 걸고 발간되었다는 점이 이상하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이후 '페미니즘 문학'으로 라벨링된 각종 도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강연자는 당시 '페미니즘 문학'으로 대표되는 책들의 일률적인 표지 디자인(아래 사진 참고)은 '한국 문학이 생각하는 여성문학은 이런 것이다'를 여실히 드러내는 하나의 증거로서 기능함에 주목하였다. 아직까지도 문학계는 과거부터 고정된 여성의 이미지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편, 이렇게 다양한 페미니즘 문학들이 출간되었지만 한 켠에서는 이것이 모두 '여성서사'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페미니즘'이라는 껍데기를 가졌지만 '진짜' 여성서사는 아닐 수 있으며, 우리는 '진짜 여성서사'를 소비해야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기 시작한 것이다.




(출처 : https://blog.naver.com/mcohj/221149102554)


'진짜 여성서사'에 대한 감별 시도는 페미니즘을 '질문의 범주'로 소환하였다. 과연 여성서사란 무엇인가? 이에 강연자는 몇 가지 질문을 던졌는데, 그 질문이란 첫째 백델테스트를 통과하면 여성서사인가? 둘째 여성캐릭터만 등장하면 여성서사인가? 하는 것이었다. 


첫번째 질문에 대한 반론으로는 연분홍치마에서 제작한 '두개의 문'과 '공동정범'을 예시로 삼았다. 이 두 영화에는 여성이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김일란,이혁상 감독은 이 영화를 '페미니스트가 아니었다면 만들 수 없었던 작품'으로 설명한 바 있다. 페미니스트로 살면서 주변부에 사는 자로서의 감각을 익힐 수 있었고, 그 감각이 소수자를 향한 시선과 맞닿게되면서 이 작품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백델테스트만으로 여성서사인지를 판단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반론으로는 백합물(GL)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예시로 든 작품은 '언니 저 달나라로'에 대한 비평(퀴어인문잡지 삐라)이었는데 내가 이 글을 읽어보지 못해 구체적인 내용 파악은 어려우니 패스.


트위터에서 돌아다니는 '여성서사'에 대한 기준표(서사를 알탕-준여성서사-여성서사-페미니즘으로 분류)를 보며 강연자는 '이것이 과연 생산적인 방식인가?'라는 의구심을 가졌다고 한다. 이 표에 의하면 대부분의 여성서사는 그 기준에 미달한다. 소비할 수 있는 작품이 몇 개 남지 않는 것이다. 재밌게도 이와 비슷한 흐름이 1980년대에도 있었다. 여성해방문학에 대한 단계론적 상상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여성이 쓴 문학(고발문학) -> 여성 문제를 다룬 문학(재해석문학) -> 여성 해방의 길을 제시한 문학(세계관 제시의 문학)으로 각 문학들을 분류하려는 움직임이었다. 이 과정에서 박완서씨의 작품도 기준미달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여성 독서사'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1980년대에는 하이틴 로맨스, 주부잡지, 서정에세이와 시들, 1990년대에는 여성해방 문학의 미달태, 2000년대에는 탈BL담론으로 이어지는 여성독서 부정의 역사를 소개하며, 남성 평론가들을 위시한 문학계의 여성독서를 향한 질타에는 '여성은 앎의 타자'이며, 여성의 독서는 '감상성, 낭만성, 현실도피성'의 극히 협소한 기능만 수행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었음을 설명했다. 이에 반박하는 여러가지 시도들로는 여성들이 읽은 책의 목록을 조사하여 가벼운 책이 아닌 것을 골라내보거나 여성들이 즐겨 읽던 책들이 실은 가벼운 책이 아니었음을 새로운 해석 제시를 통해 증명하기, 또는 여성들만의 방식으로 독서해왔다고 주장하는 등의 방식들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주류 담론은 '여성독자부재론' 이었는데, 이러한 시대상은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에 등장하고 묘사되는 '마누라'를 통해 설명이 가능했다. 이 책에서 마누라는 총 6번 등장하는데(오혜진씨가 직접 세어보셨다고 함ㅋㅋ) 영화에 관해서만 등장하거나 김현의 독서를 중단시키는 사람으로만 등장했다는 것이다. 과연 김현의 '마누라'는 책을 읽지 않았을까? 그저 남편의 독서를 중단시키고 집안일을 하기에 바빴던 사람일 뿐일까? 마누라의 행복한 책읽기는 왜 등장하지 않았던걸까? 왜 여성의 독서는 주목받지 못했을까? 대형 서점이 등장하고, 출판업이 성행하던 그 시기의 출판업계를 지탱하던 힘은 엄연히 여성에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후기-(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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