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1


    미셸 포르트와의 인터뷰에서 아니 에르노는 '저는 아마도 어머니를 위해, 또 어머니에 반해 스스로를 만들었을 거'라고 말했다. 나도 그랬다. 나는 오랜 세월 엄마의 힘에 짓눌려 살았다. 그 힘에 안정감을 느끼기도 불편해하며 밀어내기도 굴복하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균형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이 이야기는 그 노력에 관한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엄한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깍두기 공책에 글씨를 똑바로 쓰지 않으면 나머지 공부를 시키는 분이었다. 연필을 똑바로 쥐지 않으면 딱딱한 자로 손등을 때렸고, 무서워서 울면 오히려 더 크게 호통을 치는 사람이었다. 냉정하고 무심한 성격이 꼭 엄마 같았다. 엄마는 그 선생님을 썩 마음에 들어했다. 나는 엄마와 엄마가 좋아하는 사람 모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뭐든 열심히 했다. 학교에 날 데리러 온 엄마가 선생님을 보며 웃고 인사할 때 괜히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글씨 공부, 받아쓰기, 인사하기, 선생님과 눈 잘 마주치기 같은 것들을 잘 못한 날엔 특히 더 그랬다. 나는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썼다. 가끔 여자아이들을 줄 세워놓고 가슴이 얼마나 자랐는지 보겠다며 엄격한 얼굴로 가슴을 툭툭 치거나 주무르던 담임 선생에게조차 잘 보이고 싶어서 싫은 일도 꾹 참았다. 어른의 말은, 아니 엄마의 말은 거스를 수 없는 거센 강줄기 같았다.

    엄마는 내가 똑똑하길 바라면서도 많이 알지 않기를 바랐다. 엄마는 내가 공부 이외의 것에 관심을 가질 때 조바심을 냈고, 특히 사람에 대해 궁금해할까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내가 타인의 사연을 궁금해할때마다 필요 이상으로 엄하게 굴었다. 티비를 보다가 '왜 저 아저씨는 자기 부인한테 저렇게 해?' 라고 물으면 엄마는 '세상 사는게 다 그렇다, 너는 신경쓸 거 없다'며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했고 교육 제도를 고발하는 프로그램에서 자살한 고등학생의 이야기가 나온 날에는 갑자기 신경질을 내며 티비를 꺼버리기도 했다. 엄마는 고작 리모콘 하나로 나의 두 눈과 귀를 가릴 수 있을거라 믿는 것 같았다. 엄마의 방식은 어느정도 먹혔다. 나는 대학에 가기 전까지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엄마는 동네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같이 장이라도 보러 가는 날이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가뜩이나 동네도 좁은데 아는 사람까지 많으니 엄마는 각종 소문들을 빠르게 접했다. 소문을 빨아들이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동네 전체의 눈치를 봐야했다. 가족들은 우리가 오래 머문 그 동네가 조용하고 평화롭다며 좋아했지만 나는 작은 감옥에 갇힌 것처럼 답답했다. 하루빨리 그 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부정적인 소문은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가벼워서 전파력이 강하다. 하지만 인간에게 닿는 순간 그 무게는 달라진다. 특히 우리 엄마는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버거워했다. 엄마가 무엇인가 듣고 온 날엔 잠들기 직전까지 내게 그 얘기를 반복했다. 나는 엄마의 말을 도무지 무시할 수가 없어서 늘 울며 잠들었다. 내 마음보다 세상의 평가를 더 신경쓰는 엄마가 미웠다. 하지만 엄마에게 밉다고 말할 순 없었다. 그래서는 안될 것 같았다. 엄마는 우리 엄마니까 미워해서는 안됐다. '우리'라는 말이 주는 속박을 그 때 처음 알았다. 왠지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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