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5
























꼬미와 다섯 고양이


    하루에도 몇번씩 꼬미 이름을 부르며 동네를 돌았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2시간까지. 대답은 없었다. 그래 꼬미는 우리가 불러도 대답을 안하던 아이였지... 대답 훈련을 할 수 있게 우리가 더 자주 이름을 불러볼걸.. 후회가 됐다. 꼬미와의 이별보다도 당장 끼니를 떼우지 못할 꼬미의 주린 배가 걱정돼서 더 초조했다. 우리가 매일 챙겨준 바람에 꼬미도 이 패턴에 어느 정도 적응했을거였다. 매일 같은 시간에 깨끗한 물과 밥이 눈 앞에 놓인다는 걸 알던 아이는 이제 그 시간에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나는 걱정스러운 일이 닥쳐올 때, 내 앞에 펼쳐질 비극과 나를 강타할 각종 불행들을 미리 그려보는 편이다. 지금까지는 내가 예상한 불행과 비극 모두가 나를 비켜갔지만, 처음으로 내 예상이 맞으면 어떡하지, 그게 또 하필 꼬미 일이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 꼬미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 밤이면 고다(고양이라서 다행이야)카페에 들어가서 '길고양이'로 키워드 검색을 한 후 걸러진 최신글을 모조리 읽었다. 혹시나 꼬미의 소식이 있을까 노심초사하며 스크롤을 내렸다. 온통 슬프고 화나는 내용 뿐이었다. 호의를 갖고 다가온 고양이를 인간이 들어다 던진 사건, 자기집 화단에 똥을 쌌다고 동네 고양이의 귀와 꼬리를 자른 사건, 남대학생 여럿이 고양이에게 담뱃불로 상처를 입힌 사건. 인간에 의한 비극적인 죽음 외에도 차에 치이거나 옥상에서 떨어지는 등 사고로 죽는 고양이에 대한 글도 있었다. 이런 글들을 읽은 날엔 무릎을 꽉 끌어안은채로 다른 날보다 더한 한기를 느끼며 한참 시름을 한 후에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슬픈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결국 꼬미를 찾아 헤매는 일에 지쳐 단념하자고 마음 먹었을 무렵, 기적처럼 꼬미가 나타났다. 정확히는 우리가 꼬미를 발견했다. 꼬미는 본인이 자주 가던 도시락집 앞 차 밑에 웅크려있었다. 아이는 전보다 야위었고 작아져있었다. 나는 너무 반갑고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호들갑을 떨면 꼬미가 겁을 먹을테니 거리를 유지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꼬미 옆에 웬 점박이들이 있는 것이 아닌가.


(꼬미의 새끼들. 좌측부터 당당, 튼튼, 딴딴)


(좌측부터 꼬미, 튼튼, 딴딴)

    우리는 우리의 무신경함에 탄식했다. 배가 부른 꼬미를 보며 어째서 한번도 임신한거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던걸까? 우리는 고양이에 대한 상식이 없어도 너무 없었고, 그저 매체에서 본 뚱냥이의 모습처럼 꼬미도 그렇게 뚱뚱한 고양이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길에 있는 뚱뚱한 고양이들 중 일부는 보살핌을 잘 받고 잘 먹어서 살이 찐게 아니라, 깨끗한 물을 먹지 못해 부은 거라고 한다.) 인간 아이 한 명을 키울 때에도 그렇게 오랫동안 공부를 하는데, 왜 고양이에 대해서는 공부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고부해(고양이를 부탁해)만 보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우리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혼자 출산을 하느라 힘들었을 꼬미를 생각하니 왠지 같은 암컷(?)의 입장에서 눈물이 났다.

    우리가 꼬미를 발견했을 당시 꼬미의 새끼는 총 다섯 마리였다. 그 중 둘은 곧 죽을 것처럼 약해보였다. 꼬미는 그 두 아이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있는 것 같았다. 차가 지나는 길을 건널 때면 약한 아이들의 목덜미를 물어 먼저 옮겨둔 후 한마리씩 데리고 가는 식으로 이동했고, 아이들이 이탈할까 신경이 곤두선 상태였다. 그래도 꼬미는 우리를 기억하는지 우리가 어느 정도 선까지 다가가는 건 허락해주었다. 하지만 꼬미가 허용해준 범위를 벗어나면 우리에게 하악질을 하며 경계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꼬미는 아예 새끼들을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숨겼다. 

    우리는 갑작스레 여섯 마리의 고양이를 돌보게 된 상황에 당황했다. 물론 꼬미는 우리에게 새끼까지 돌보아달라고 부탁하진 않았지만, 우리가 꼬미를 돌본 기간이 있으므로 그의 새끼를 보살피는 일도 당연히 우리 몫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조금 부담이 됐다.  하지만 다섯 마리 중 두 아이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모른 척 할 수는 없었다. 아이들 독립할 때까지 꼬미 혼자 힘들지 않게 잘 챙겨주자고 우리끼리 기합을 넣었다.

    우리는 먼저 꼬미의 아이들에게 밥을 줄 방법을 생각해내야했다.  꼬미가 아이들 젖을 물려야하니 가장 잘 먹어야한다고 생각해서 꼬미 먼저 극진히 챙기기로 했다. 좋은 캔 사료를 건사료와 버무려 건네길 몇 번, 꼬미는 밥을 다 먹지 않고 밥 주위를 맴돌며 낑낑댔다. 새끼 생각이 나는 모양이었다.  꼬미의 마음을 알아차린 우리는 몇 번 꼬미 몰래(사실 '몰래'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꼬미는 영리한 친구라서 진작부터 알았을 것이고, 우리가 쫓는 걸 아마 몇 번 모른 척 해줬던 것 같다.)  꼬미의 뒤를 밟았다. 하지만 촉이 좋은 꼬미는 우리가 쫓아오는 걸 알고 일부러 새끼들이 없는 곳으로 유인하여 우리를 혼란에 빠뜨렸다.  우리의 속을 몰라주는 꼬미가 밉고 답답했지만 한편으론 꼬미가 이렇게 영리하기 때문에 아이 다섯 마리를 혼자 지킬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또 다시 머리를 굴려야했다. 밥을 우리가 직접 줄 수 없다면 꼬미에게 갖고 가라고 전해주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생각한 묘책이 캔과 건사료를 버무려 비닐에 담아 꼬미에게 던져주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적절치 못한 생각이었는데 첫째, 음식과 쓰레기를 분별하지 못하는 새끼 고양이들은 비닐도 그냥 뜯어먹을 수 있는 점을 고려하지 못했고, 둘째, 우리가 비닐 쓰레기를 매일 수거하지 못하면 동네가 더러워지고 결국 비난의 화살은 또 고양이에게로 향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이만한 대안을 강구하지 못해 우선 실행에 옮겼다.

    다른 것보다도 꼬미가 비닐 안에 든 것이 밥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했다. 우리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밥을 한 가득 담아 꼬미에게 던졌다. 꼬미는 깜짝 놀라 뒤로 도망친 다음 우리 눈치를 보면서 살금살금 밥 덩이로 다가왔다. 그리곤 한참이나 냄새를 맡았다.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꼬미가 저 밥을 물고 가지 않으면 아이들은 금방 배고파질테고, 그럼 마음이 급해진 꼬미가 가져간 쓰레기봉투 속 이상한 음식 이를테면, 치킨 뼈나 생선 가시 같은 것을 먹고 목이 막혀 죽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만)초조했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꼬미가 밥 덩이를 입에 물었다.

(꼬미가 밥 덩이 물고 있는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