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고 나면 기운이 쭉 빠지고, 탈력감에 일 이외의 다른 일은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난 내 스트레스를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풀어내는 탁월한 재주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가능했던건 그냥 덜 바빠서였다. 바쁘고 정신이 없으니 좋은 걸 봐도 눈에 담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 머릿 속에 다시 그려내지도 못한다. 그러니 스트레스가 거름망에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고여있게 되고.. 고인 것들은 썩고 구린내가 나기 마련인데 그 위에 끊임없이 뉴-스트레스가 쌓이니 결국 대환장파티가 되어버린다..

일이란게 순서에 맞게 진행이 되어야하는데 (가령 A-A'-A''-A(최종) 이런 식으로) 늘 그렇듯 사이사이에 말도 안되는 B,C, 급기야 나는 관여한 적도 없던 Z까지 끼어버리니 매일 긴장해야한다. 긴장은 물리적 행사가 가능한 어떤.. 짐승의 힘 같아서 뇌부터 몸 전체를 칭칭 감고 놔주질 않는다. 다 삭아버린 긴장의 끈들은 녹아들어 몸의 구석구석을 점령해버린 것 같다. 일과 생활의 분리가 어렵고 악몽을 꿔도 일에 쫓기는 꿈만 꾼다.

이렇게는 살 수 없다. 방법을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