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22















시장 떡 맛(떡 맛이라는 말은 조금 이상하게 들린다)에 실망한 뒤 맛있는 떡에 대한 욕망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곧장 마켓컬리에서 백설기를 주문했는데, 담백하고 보슬보슬하니 너무 맛있다. 개별포장만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이 날은 의도치 않게 정주리씨의 인스타그램 글을 보게 됐다. 트위터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여러 의미에서 엄청난 티엠아이들을 마주해야할 때가 있는데, 정주리씨가 올린 사진은 내가 트위터에서 본 사진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불쾌했다. 

정주리씨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다가 최근에 신박한 정리를 보면서 많이 힘드시구나 정도로 짐작만 하고 있던 터였다. 정주리씨 편에서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역시 남편의 방만 따로 있다는 점이었다. 어디에도 정주리씨의 공간은 없었다. 그리고 그가 뱉어내는 죄책감이 묻어나는 말들.. 이를테면 정리를 제대로 못해줘서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같은. 그 말들이 참 마음 아팠다. 한창 때인 자식이 셋이라 정리는 커녕 숨 돌릴 틈도 없어보이는 사람이 눈물을 훔치며 그렇게 말하는 일이, 나는 왠지 용납이 안됐다. 이것도 그의 인생이고 그의 감정인데 내가 왜 이토록 화가 나는 것인지. 

아이들에게 충분히 잘하고 있지만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게 어떤 뜻인지, 나한테는 아이가 없어서 잘 모르겠다. 아마 앞으로 알 수 있는 기회도 없을거다. 이런 내가 그 방송을 보며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정주리씨의 눈물과 파리한 얼굴을 보고 힘들구나 짐작하는 것 뿐이다.

근데 정주리씨가 올린 사진ㅡ남편이 음식물찌꺼기를 남겨놓은ㅡ은 좀 다르다. 난 아이를 키워본 적은 없지만 사회생활은 해봤고(하고 있고), 그래서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여러가지 단서들을 통해 알 수 있는 사람이다. 이건 일종의 감각이라, 사람을 조금만 만나봐도 비교군이 생기고 경험이 쌓이기 땜에 사실 사회에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있다면 웬만큼 둔하지 않은 이상 모르기가 힘들다. 인격적인 대우, 동등한 관계를 증명해주는 사인들, 나를 존중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사소한 행동들, 말보다 앞서는 비언어적 표현들. 나는 이런 것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사진이 너무 불쾌했다. 아마 정주리씨도 남편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외면하고 싶을거고 계속 이대로 지내고 싶을거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카톡 메시지도 기가 찼다. 애미야 욕봐? 호칭은 관계를 드러낸다. 장난삼아 하는 말도 하루이틀 쌓이면 더 이상 장난이 아니다. 말에는 힘이 있고 그건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다. 이 역시 둘 다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두 사람에게 직접 할 말은 없다. 그들이 뻔히 알고 있을 그 사실을 적어도 둘 중 하나는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기를, 그래서 상황이 좀 더 나아지기를 바랄 뿐.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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