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어학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어학공부는 시작이 어렵지만 기본기를 익히고 나면 재미를 느끼며 학습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이것이 앞으로의 내 생계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나는 그런 의미에서 참 재미없는 어학공부를 하는 중이다. 이 공부는 내게 유학생활의 고단함을 위한 단초로 작용할지도 모르고, 이직의 기반을 마련해줄지도 모른다. 어쨌든 ‘더 멋진’ 내가 되기 위한 공부인 건 확실하다. 인문학적이 아니라 사회과학적 혹은 경제학적으로 말이다.

4월엔 십년지기의 결혼식이 있다. 나도 계속 알고 지내오던 사람과의 결혼이라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마냥 즐겁기만할 줄 알았는데 웬걸, 가방순이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인지 벌써부터 속이 울렁거린다. 아닌가 실은 그 자리에서 내가 정말로 피하고 싶던(그래서 피해왔던) 대학 시절의 얼굴들을 마주해야해서인가. 뒤돌아보는건 나쁜 습관인줄 알지만 내 뒷덜미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 과거들에게서 자력으로 도망치기란 쉽지 않다. 과거는 힘이 세다는 것을,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만들었고 미래의 나를 구성할 것이란 것을, 그러니 결국 과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을 슬프게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곧 옥탑방으로 이사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모른다-라고 쓴 건 아직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을 짜릿하게 느끼던 시절도 있었다. 당연히 지금은 아니다. 모든게 확실해질때까진 잠 못 이룰 것 같다.

백래시를 읽다가 피곤해져서 J.M.배리 여성수영클럽을 읽고 있다. 큰 기대 없이 읽기 시작해서 마지막장을 넘길 때쯤엔 엉엉 울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단은 나 역시 별 기대 없이 읽고 있다. 

동거인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정말 죽은듯이 자는 사람이다. 나는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 자주 뒤척이고 또 자주 부스럭대는데 동거인은 이런 방해에도 꿋꿋이 잘 자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 같은 올빼미에게 이런 짝꿍이야말로 좋은 동거메이트지만 가끔 외롭다. 잘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참 예쁘게도 잔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자그마한 움직임까지도 알아차려줬으면 좋겠는 그런 이상한 마음에서다. 내가 내 작은 세계에 수놓는 조그마한 궤적들이 그의 눈과 머리와 마음에는 선명하게 남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