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딴이와 튼튼이


둘을 챙겨준 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길고양이를 챙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비용, 시간, 에너지 모두를 쏟아야 하는 일이라 그렇다. 우리 몸 하나 거두기도 힘든 처지에 그 연약하고 뜨끈한 생명 둘을 더 챙기려니 당연히 그렇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시작한 일이니까. 

매일 비슷한 시간(21:00~22:00 사이) 에 챙겨주다보니 9시만 되면 아이들은 길에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 모습이 위험해보이지만 말릴 방법은 없다. 아이들이 사람들에게 오래 노출되어 해를 입기 전에 우리가 가는 수 밖에. 아이들을 훈련시키면 좋겠지만, 우리 손을 탄 이상 그들이 잘 사는 방법을 궁리하는 건 백프로 우리의 몫이다.    누군가는 고양이를 챙기는 일이 이타심에서 비롯된 일이라 말하지만, 인간이 고양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순전히 이기심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잘 알고 있어서 밥을 달라고 야옹야옹 울며 보채는 고양이들을 한 번도 미워한 적 없다. 

딴딴이와 튼튼이는 자매다. 처음엔 당당,딴딴,튼튼 이렇게 셋이었다. 그러다 당당이가 사라졌다. 사람을 잘 따르던 아이라 누군가 데려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이건 아주 희망적인 가정이다.) 딴딴이는 영양실조로 꼬리가 뭉툭하고 짧다. 맹한 구석이 있어 자꾸 마음이 쓰인다. 튼튼이는 꼬미를 똑 닮았다. 애교가 많고, 조금만 만져줘도 골골송을 부른다. 둘은 우리가 마련해준 집에서 함께 살다가 최근 찢어졌다.  튼튼이는 여전히 그 집에 살지만, 딴딴이는 어디에 사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영역 다툼에서 튼튼이가 이긴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밥 시간만 되면 둘이 자연스레 튼튼이 집 근처로 모인다는 것이다. 

딴딴이는 최근 임신을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때부터 나는 딴딴이를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 왜인지 모르겠다. 내 뒤에 등을 보이고 앉아있는 그 모습이 쓸쓸해보여서일까 아니면 가만히 날 올려다보는 딴딴이의 눈이 슬퍼보여서일까. 뭐가 됐든 이건 다 내 생각일 뿐이다. 남자친구는 딴딴이가 아무 생각도 없어 보인다고 말한다. 

나는 아이들을 챙겨주기 시작한 것을 자주 후회한다. 아무런 준비 없이 아이들을 돌보겠노라 다짐한 것을 후회하고, 그들을 책임지기에 나는 너무 형편없는 사람인 것 같아 후회한다. 내가 아닌 다른 능력 있는 사람이 아이들과 만났더라면 달랐을까 자주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관심 보이던 이들이 꽤 있었는데. 

주인집 때문에 아이들을 데려오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고, 아이들이 우리가 회사에 있는 동안 무슨 일을 당할까 두렵기도 하다. 딴딴이가 사실은 복막염에 걸린 걸까봐 걱정하면서도 비용 때문에 병원에 데려가지 못하는 내가 한심스럽다. 아이들의 까만 발이, 뭉친 털이, 쫑긋대는 귀가 안쓰럽다. 가만히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딱하다. 나는 자주 후회한다. 저 작고 동그란, 아무 죄 없는 아이들을 만난 것을 후회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100의 마음을 줄 때 아이들은 내게 10의 마음만 가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를 기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하루쯤 아이들을 찾아가지 못해도 아이들이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더라도 나는 여전히 100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할거다. 모든 관계에서 공평한 마음을 바라던 내가 최초로 가진 바보 같은 기대. 하지만 알고 있다. 이것조차도 내 욕심이고 이기심이란걸. 


길고양이를 챙기는 사람들의 진짜 책임은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가 키우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끝까지 책임감 있는 인간이고 싶다. 그 때까지 아이들이 별 탈 없이 잘 지내주었으면 한다. 인간이 빼앗아 간 동물들의 땅에서 그들을 보살필 죄 많은 인간이 바로 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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