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23

허수경 수수께끼

극장을 나와 우리는 밥집으로 갔네

고개를 숙이고 메이는 목으로 밥을 넘겼네

밥집을 나와 우리는 걸었네

서점은 다 문을 닫았고 맥줏집은 사람들로 가득해서 들어갈 수 없었네

안녕, 이제 우리 헤어져

바람처럼 그렇게 없어지자

먼 곳에서 누군가가 북극곰을 도살하고 있는 것 같아.

차비 있어?

차비는 없었지

이별 있어?

이별만 있었지

나는 그 후로 우리 가운데 하나를 다시 만나지 못했네

사랑했던 순간들의 영화와 밥은 기억나는데

그 얼굴은 봄 무우순이 잊어버린 눈물처럼

기억나지 않았네

얼음의 벽 속으로 들어와 기억이 집을 짓기 전에 얼른 지워버렸지

뒷모습이 기억나면 얼른 눈 위로 떨어지던 빛처럼 잠을 청했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당신이 만년 동안 내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들여다보고 있었네

내가 만년 동안 당신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붙들고 있었네

먼 여행 도중에 죽을 수도 있을 거야

나와 당신은 어린 꽃을 단 눈먼 동백처럼 중얼거렸네

노점에 나와 있던 강아지들이 낑낑거리는 세월이었네

폐지를 팔던 노인이 리어카를 끌고 지하도를 건너가고 있는 세월이었네

왜 그때 헤어졌지, 라고 우리는 만년 동안 물었던 것 같네

아직 실감나지 않는 이별이었으나

이별은 이미 만년 전이었어

그때마다 별을 생각했네

그때마다 아침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던

다리 밑에 사는 거지를 생각했네

수수께끼였어,

당신이라는 수수께끼, 그 살[肉] 밑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잊혀진 대륙들은

회빛 산맥을 어린 안개처럼 안고 잠을 잤을까?




이 시 처음 알았을 때 줄줄 외울 정도로 여러 번 읽었었는데 이젠 가물가물하네. 나한테 이별이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니라서 그런가봐 너무 많은 것들과 헤어져와서 이제는 별 일 아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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