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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수' 리뷰(장류진 작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뜻하지 않은 계기로 맞닥뜨리게 되는 '연결'의 장면들이 있다. 장류진 작가의 단편소설 '연수'는 그러한 연결의 장면들을 다소 투박하게 포착해낸다. 

    '나'(주연)는 신규 프로젝트를 핑계로 차량을 구매하고 운전을 다시 시도해보려한다. 주연에게는 과거의 운전 경험 실패가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이런 까닭에 주연은 운전 연수를 받아보려한다. 맘카페에 가입하고 정회원 승급 절차를 기다리는 동안 주연은 주연의 결혼을 둘러싼 '진짜 주연맘'과의 갈등을 떠올리며 괴로워하고, 승급 후 카페를 둘러보던 중 '사고팔고' 올라온 중고 팬티 거래를 보며 아연하여 비혼에 대한 결심을 더욱 더 굳히게 된다. 한편, 카페에서 받은 번호로 연락을 한 주연은 묘하게 프로다운 구석이 있는 사람에게 다소 이해가 안되는 항목이 포함된 서식을 채워보내고 연수를 받기로 한다. 몇 가지 찜찜한 구석이 있기는 하나 주연은 그냥 넘어가기로 마음먹는다. 

    아주머니와 함께 운전 연수를 받게 된 주연은 본인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 교육 과정과 결혼과 출산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녀의 무례함에 기분이 언짢아진다. 황당한 기분으로 첫 날의 연수를 마친 주연은 과거의 경험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자신을 책망한다. 주연은 운전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이것저것 검색해보게 되고, 누군가 주연에게 '운전 같은거'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해주길 간절히 바라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음 날 어김없이 연수를 받으러 간 주연은 편의점에서 아주머니와 아침식사를 하면서 그녀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다. 처음 보냈던 서식 속 이해 못할 혈액형 항목의 존재 이유를 통해, 그리고 본인 또래의 여성도 회사를 다니는지 궁금해하는 그녀의 질문을 통해. 그리고 주연은 문득 아주머니와 비슷한 또래의 여성인 엄마를 떠올리게 된다. 당신의 인생에서 기쁜 일을 스스로에게서가 아니라 딸에게서 찾던 그 모습들을. 

    오솔길을 달려보자는 강사의 제안에 낯선 길에 접어든 주연은 커다란 호수의 풍경을 보게 되고, 그 풍경 속에서 운전을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게 된다. 

    오솔길 코스를 마친 후 주연은 강사에게 연수 시간을 추가할 것을 제안하지만, 곧장 거절당한다. 그리고 이내 원격 수업을 진행한다. 스피커폰으로 조언을 해주겠다는 강사의 제안에 주연은 난감해하며 운전을 시작한다. 긴장한 상태로 운전을 하던 주연은 길을 잘못 들게 되는데, 이 때 강사가 뒤에서 주연을 막아주며 주연이 받아야 할 경적을 대신 받는다. 그리고 잘하고 있다는 강사의 격려와 함께 소설은 마무리된다.

    소설에서는 짤막하지만 분명하게, 강하게 얽혀있는 '연결'의 고리들을 보여준다. 도입부에서는 그 연결 고리의 녹슨 부분을 먼저 조명하는데, 엄마와의 결혼을 둘러싼 갈등, 맘카페의 중고 팬티 거래에 대한 당혹스러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고 무례한 연수 강사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주연을 통해서만 기쁨을 알고 느끼던 엄마의 모습과 일면식 없는 맘카페 회원인 준서맘의 소개로 원하는 조건에서 시작할 수 있게 된 연수, 왠지 모르게 엄마를 떠올리게 만드는 연수 강사의 질문들과 혈액형을 믿는 시덥잖은 이유들을 통해 작가는 연결의 고리가 녹슬었을지언정 끊어지진 않으리라는 것을 분명하게 시사한다. 

    그리고 오솔길 코스를 주행하는 주연의 태도에서 주연도 우리처럼 연결의 장면들을 포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연이 느낀 편안함과 안정감은 단순히 그 풍경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주연도, 우리도 안다. 이윽고 갑작스럽게 공간(주연의 차)과 공간(강사의 차)의 단절을 경험하게 된 주연에게 강사가 스피커폰으로 조언을 하고, 뒤에서 대신 경적을 받는 장면에서 작가는 공간(세대, 상황)이 분리되어 있어도 주연과 강사는(여성과 여성은) 연결되어 있음을 다소 투박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2030세대의 여성들은 5060세대의 고충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건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로는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틀린 것으로 치부하고, 서로를 맹렬하게 비난하고 미워하며 각자의 세대로만 남는다. 섞이려는 시도는 갈등의 날카로운 칼날에 무화된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처지가 다르더라도, 성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서로가 서로를 필연적으로 지지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희미하고 미약한 지지의 힘을 선명하게 느끼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우리 뿐이라는 걸, 결국 서로를 돕는 건 서로뿐이라는 걸 느끼게 되는 바로 그 장면을 여성들이 많이 목격하고 경험했으면 좋겠다. 비록 서로를 돕는 방식이 외부의 경적을 대신 받아내는 일 뿐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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