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

몸이 좀 아팠다. 몸 구석구석에 작은 추를 달아놓은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몸이 아프면 좀 추해지는 것 같다. 일종의 누름돌 역할을 하던 몸이 약해지면서, 꾹 눌러뒀던 아픔들을 제어하지 못하고 그대로 방출시켜버려서 그렇다. 추해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냥 어디에도 쓰고 말하지 않으면서 남들에게까지 추태를 보이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도 나는 나를 감당할 수 있으니 내게 추한 모습을 보이는 건 괜찮다. 나조차도 감당이 안되는 순간이 오면 그 땐 그냥 자버리면 된다. 

아플 때 드는 상념들이 나를 끌고 가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는 걸 알지만.. 자기연민과 불행은 너무나 달콤해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마다 나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것들을 본다. 실은 완전히 상관 있겠지만 나 스스로는 전혀 상관없다고 느끼는 것들. 이를테면 물리학 영상이라던가.. 우주.. 해양생태계.. 먼 나라에서만 자라는 풀.. 철새도래지 같은 것들 말이다. 그것들을 보다보면 내 불행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계속해서 움직이면서 일종의 부산물들을 좋든 나쁘든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세계의 심오한 원리 속에서, 기껏해야 질소나 이산화탄소를 뿜어낼 뿐인 인간이 나빠져봤자 얼마나 나빠지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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