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2)


    여시엔 애마방이라는 게시판이 있었다. 시시콜콜한 고민부터 묵직한 고민까지 연애에 대한 여러 고민들이 올라오는 곳이었다. 고민들은 대체로 이랬다. ‘남자친구가 커플통장을 만들자고 하는데 만드는 게 나을까?’ ‘나는 섹스를 하고 싶지 않은데 남자친구는 자꾸 하자고 해. 해주지 않으면 남자친구가 성욕을 다른 곳에서 풀까 두려워.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남자친구가 밤사1)에 다니고 있단 걸 알았어. 밤을 새우고 집에 들어온 것 같던데 술만 마시고 온 거 맞겠지?’ ‘남자친구가 내 가슴이 너무 작대. 가슴 확대 수술한 여시 있어? 조언 좀’ ‘남자친구랑 모텔에서 벌거벗고 누워있는데 갑자기 사진을 찍을 수 있냐는거야. 그래서 거절했는데, 요즘은 사람들 섹스 영상도 찍으면서 논다고 하더라고. 그런걸 찍어야 더 흥분된다면서 한 번 찍어보자고 하길래 찍고 바로 지웠는데 괜찮겠지?’

    이런 고민들에 화가 날 때도 있었지만 큰 문제는 못 느꼈다. 누구나 남성과 연애를 한다면 해볼법한 고민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늦은 시각까지 티비를 보며 달글2)을 달리다가 재미가 없어져서 들어가 본 애마방에서 심상치 않은 제목의 글이 보였다. 남자친구에게 주기적으로 폭행을 당하고 있으며, 벗어나고 싶지만 자신을 정말로 죽일까봐 두렵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댓글을 어떻게 달아야하나 고민하고 있던 차에 글은 지워졌고, 새로고침을 몇 번 해보았지만 비슷한 내용의 글이 또 올라오지 않았다. 처음엔 주작이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글을 삭제한 것도 그렇고, 그 정도로 심각한 폭행을 당하고 있다면 경찰에 신고할 일이지 왜 여시에 글을 찌겠냐3)는 의심에서였다.

    룸메에게 이 일에 대해 말했더니, 룸메는 그런 글이 종종 올라온다고 했다. 하지만 늘 금방 지워진다고, 그래서 주작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왠지 안심이 되어서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상대가 쓴 글이니 잊는 것은 쉬웠다.

    얼마 뒤 나는 고시준비를 시작했다. 처음 1~2년 정도는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고, 이후 애정을 쏟던 학교 내 커뮤니티에서 퇴출 당한 뒤로는 도서관 출입을 못했다. 정신을 차리기까지 수개월이 걸렸고, 이후에는 휴학 후 고시촌으로 통학을 했다. 당시 나는 학교에서 겪은 일련의 사건들로 마음이 바짝 말라있었다. 학원에선 사람들과 엮일만한 그 어떤 활동도 하지 않았고, 스터디 모임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사람 마주치는 일이 힘들어 몇 개 없던 학원 강의마저도 인강으로 돌리고 있던 시기였다. 그 때 언니를 알게 됐다.

    언니는 해사한 미소를 띤 얼굴로 늘 먼저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친절이 부담스러워 몇 번 인사를 무시했지만, 언니는 아랑곳 않고 내게 계속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 얼굴이 싫었다. 억지로 입꼬리를 잡아 올린듯한, 팽팽하게 긴장되어있는 그 얼굴을. 하지만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언니를 따랐고 좋아했다.

    한번은 자주 가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언니가 같이 먹자며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나는 언니의 행동이 무례하다고 생각했지만 대거리할 기운이 없어 그렇게 내버려뒀다. 한참 말없이 밥을 먹다가 언니가 대뜸 내게 본인의 동생 이야기를 꺼냈다. 나를 보면 왠지 동생이 떠오른다며, 경찰공무원 준비를 하느라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애틋한 사이라고 했다. 그렇게 불쑥 자신의 얘기를 꺼내놓는 사람에게 나는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함부로 본인의 사적인 이야기를 하지말라’ 며 세상 이치를 다 깨우친 도사마냥 사람을 믿어서는 안된다거나 사람에게 기대하면 결국 나만 다치게 된다는 둥의 소리를 해댔다. 말을 하면서도 내가 한심한 줄 알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그 말들은 언니를 향한 공격이자 과거의 나를 향한 경고였다. 언니의 다정한 낯짝이 과거의 나를 닮아 꼴보기 싫다는 말을 돌려한 셈이었다.

    언니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듣고만 있다가 내게 말했다. 대학생 때 만나던 놈이 1년째까지는 잘 지내다가 2년째부터는 싸울 때 주변의 물건들을 부수더니 3년차 접어들 때부터는 본인을 때리기도 했다고 말이다. 그래서 지금도 행동이나 목소리가 큰 남성을 보면 위축된다고, 가해자와 닮은 얼굴을 보면 숨이 턱 막힌다고 했다. 나는 당황했다. 갑자기 이런 얘길 왜 하는거지. 언니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때 나를 도와준 언니들이 있었어. 내가 상담을 받게 해주고, 나의 정신적 지지기반이 되어주었던 사람들이야. 나는 널 볼 때 가끔 그 때의 내 얼굴을 떠올려. 끔찍해서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그럼에도 아침마다 적어도 한 번은 마주해야 했던 내 얼굴을 말야. 모든게 내 잘못이라고 자책하던 불행했던 내 얼굴을 말야. 근데 나는 언니들 덕분에 지금은 자책도 안하고, 그 때의 모든 일이 내 탓이 아니란 걸 알아. 나는 나를 믿게 됐어. 나를 믿게 되니까 사람들도 믿을 수 있겠더라. 너도 너를 믿어봐. 그리고 꼭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믿을만한 사람에게 마음을 열어보는 게 어때?4)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항상 밝은 모습의 언니가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위로라도 건네는 게 맞는건지 아니면 지금은 괜찮으니 다행이라며 안도감을 나누면 되는건지도 알 수 없었다. 언니는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그 날 이후에도 언니와의 관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언니가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네면 내가 말없이 고개만 까딱하는 정도였다. 나는 언니의 고백 이후 언니가 더 불편했다. 왜 다짜고짜 내게 그런 얘기를 꺼내서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 생각이 조용한 파문처럼 번져갔다. 그러다 문득 여시에서 보았던 그 글이 떠올랐다. 도움을 간절히 원하는 말투로, 주술이 하나도 맞지 않고 알아보기 힘든 엉망인 문장으로 살려달라고 절박하게 외치던 그 글이.

    더 시간이 지나 피의자 김성민이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여성을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세상은 떠들썩해졌다. 정신병에 의한 우발적 범죄라는 의견이 지배적인 가운데, 여성들은 그것이 여성혐오 범죄라며 반발했다. 정신병에 의한 것이라도 피해자의 성별을 ‘여성’으로 특정한 것은 명백한 여성혐오라는 것이었다. 그가 체포된 직후 경찰에 한 진술(‘평소 여자들에게 무시를 많이 당해 왔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범행을 저질렀다’)과 언론을 통해 밝혀진 구체적인 사건 경위(피의자가 화장실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들어온 남성 6명은 그냥 보내고, 여성이 들어오자 죽였다는 사실) 때문에 여성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나는 ‘혐오’라는 것이 오물을 볼 때 느끼는 역겨움이나 잔인한 영화를 볼 때 생기는 감정을 통칭하는 단어라고만 생각했지, ‘여성’이라는 집합명사에 들러붙어 설명이 가능한 단어인 줄 몰랐다. 이 일을 두고 친구들의 의견도 분분했다. 나는 어느 쪽이 맞는건지 감을 잡지 못하다가 과거의 일들을 떠올렸다. 내가 강간 당할 뻔한 일을, 같은 사건에 연루된 남녀가 있었지만 여성인 나만 퇴출당했던 그 일을, 애마방에서 본 그 글을, 언니가 고백한 과거의 폭력을, 어쩌면 나와 내 가까이에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을 하지만 괴로운 마음에 외면하고 부정해왔던 그 일들을 말이다.

1) 밤사 : 밤과 음악 사이. 남성들이 적은 돈을 들여 여성과 잠자리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술집이다. 
2) 달글 : 생방송을 보며 함께 달리는 글.
3) 글을 ‘찐다’ : 여시에서는 글을 ‘쓴다’가 아니라 ‘찐다’고 표현했다.
4) 일기장에 적힌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한 대화내용으로 일부 각색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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