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 대한 고찰


    인스타그램을 한 지도 어느덧 8년째에 접어들었다. 나는 오랫동안 맞팔 상태이던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면서 온라인 영역에 머물던 디지털 관계들을 오프라인으로 옮겨 오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그들의 취향이나 일상을 공유하던 수준에 머무르던 관계가 서로의 생각이나 인격을 속속들이 알게 되는 단계까지 발전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인스타그램의 특수한 경향성을 전보다 더 읽기 쉬워졌다. 내가 파악한 경향성은 다음과 같다.

    1. 인스타그램에는 하나의 주류만 존재하지 않는다. 유행을 선도하는 자들과 그 유행을 좇는 자들이 있는 한편, '유행을 좇지 않는 것'을 유행으로 만드는 자들도 있다. 또 오로지 소비만을 과시하기 위한 계정이 있는가 하면 소비를 비판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계정도 있다. 여러 큰 동심원이 중첩적으로 형성되어 있고, 나도 그 중 일부 교집합에 속해 있다.

    2. 계정이 드러내는 취향만으로는 계정주의 계층 및 계급을 추측하기가 어렵다. 자신을 하나 혹은 다중의 이미지로 둔갑시키는 것이 가능하며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물건들을 인스타그램 마켓 등을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손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그 경향은 더욱 더 짙어졌다.

    3. 많은 사람들이 인스타그램 계정을 단순히 즐거운 마음만으로 운영하지 않는다. 일정 수준 이상의 팔로워를 확보하고 있거나 본인이 예술적 소양을 어느정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에 더욱 그렇다. 이들은 본인이나 타인의 계정에 냉소를 보이면서도 인스타그램을 그만두지 못하며, 자기만족과 자기검열을 교차적으로 경험한다. 때때로 타인을 향한 모순적인 평가를 통해 분열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껍데기 뿐인 계정을 향해 저 자는 어떤 역할을 연기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난하는 한편 그 계정의 취향에 감탄하기도 하며, 내 삶은 내가 올리는 사진처럼 아름답지 않고 내가 게시하는 모든 글은 그저 미화의 산물일 뿐이라는 자조와 자신의 실력 부족(사진촬영이나 글 작성에 관한)에 대한 자괴가 대화의 기저에 깔려있으면서도 당장 이 대화를 하고 있는 오늘의 만남도 그럴듯한 글과 함께 사진을 찍어 업로드를 해야한다. 

    4.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예술적 감각에 대해 타인과 비교하거나  '태그'를 통해 관계의 도식을 파악하는 것을 통해서 또는 읽고 쓰는 글들을 통해서 말이다. 자신이 선망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팬덤을 형성하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연예인과 일반인 간의 경계는 흐려졌고 '유명인'만 남았다.

    5. 인스타그램 계정의 운영 자체를 주목적으로 하는 사람들보다 계정을 활용하여 다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각종 정보를 공유하며 자기 계발에 힘쓰는 사람들도 있고, 자신의 신념을 다수에게 알리고 그 움직임을 조직적으로 활성화시키기 위해 계정을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단순히 '일상계'로 운영되는 계정이 많지 않다.

    이러한 경향성을 토대로 나는 내 계정을 다시금 점검하게 되었다. 나는 주로 모임 운영과 책 소개 및 리뷰를 목적으로 계정을 활용해왔고, 사회적 사건들에 대해 내 신념에 기반한 의견을 피력함으로서 팔로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다. 동시에 비슷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을 더욱더 확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계정을 운용해왔다. 이러한 점검을 통해 단순히 일상계정이라고 생각했던 내 계정도 이렇게 많은 목적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고, 조금은 두려워졌다. 언제고 떠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정방형의 세계에 이토록 많은 부분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서였다. 

    이런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앞으로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만남을 이끌어내기 위해 계정을 지속해야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내가 명심해야 할 것은, 내 작은 계정을 나의 세계를 확장하기 위한 훌륭한 수단으로 여기되 내가 구성한 피드를 통해서만 세상을 보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는 사실이다.  또 인스타그램 계정 '구구'는 나의 공적자아(가면)일 뿐, 실제의 나는 다를 수 있고 이 다름이 나쁘지 않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내가 파악한 경향성 또한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부지런히 그 흐름을 읽으며 건강한 방식으로 오래토록 계정을 유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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