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 목요일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왔다. 수술 후 집 앞 산책 말고는 사람이 북적대는 곳에 간 일이 없었는데 시장조사를 핑계로 큰 맘 먹고 다녀왔다. 대강의 군집을 머릿 속에 그려넣고 갔는데도 막상 엄청난 인파를 마주하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도서전까지의 여정도 쉽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는 것이 무척 고단했고, 2호선으로 갈아탈 때엔 스스로 심각하다고 느낄 정도로 당이 떨어져 어쩔 수 없이 지하철 자판기에서 허쉬초콜렛우유를 사마셔야했다. 아픈 몸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인데도 동행에게 미안했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내가 얻고 싶은 정보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출판사별로 밀고 있는 신간 또는 작가를 살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출판사와 도서전 주최 측에서 준비한 큐레이션 리스트였다. 특히 이번 도서전 주제는 '반걸음'이라는.. 다소 소극적으로 보이나 바쁜 현대인에겐 그마저도 벅차다고 여겨지는 키워드인만큼 더더욱 큐레이션이 궁금했다. 한걸음도 아니고 왜 반걸음인걸까. 왜 우리는 언제나 big step 말고 small step을 이야기할까. 실천에 small이 붙으면 사람들은 거부감을 덜 느낄까? 더 실천하려고 할까? 마음의 부담이 덜어질까? 우리가 하려는 실천은 마음의 부담 없이 행할 수 있는 것이던가?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사람들은 책을 읽는 행위 그 자체를 실천으로 여길까? 아니면 무언가를 해보기 위해 small step으로서 책을 선택하는 걸까? 같은 무차별적이고 대중 없는 머릿 속 질문에 대한 대략의 답을 찾고 싶은 마음이었다. 

뭐.. 결론적으로 큰 해답을 얻진 못했고 질문만 더 얻어온 셈이 됐다. 우선 도서전의 큐레이션은 실무자의 입장에서 최선이라고 여겨질만한 것이었다. 그것을 베스트라고 할 수 있을진 모르겠다. 맥락상 이해가 되지 않는 책도 끼어있었지만 내가 큐레이션을 맡았더라도 그 정도 선에서 매조지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큐레이션의 흐름이 (매끄럽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읽히고 그 중 흥미를 끄는 몇 권의 책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기뻤다. 근래엔 새로운 책들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으므로 더욱 그랬다. 그리고 출판사의 매대는.. 재미가 없었다. 오로지 판매를 위한 매대의 존재는 특이점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그 중 눈에 띄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은행나무. 이 출판사는 그래도 신경 쓴 큐레이션 문구가 매대마다 기입되어 있었고 사람들이 실제로 그 문구에 매료되어 책 구입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출판사에서 밀고 있는 책(또는 시리즈)이나 작가도 꽤 명확해보였지만 여성작가 중심으로 큐레이션된 별도의 매대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이번 도서전에서는
-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임소연
- 오뒷세이아, 호메로스
- 메데이아, 에우리피데스
- 여름 상설 공연, 박은지
- 포개진 계절, 임희선
을 샀다. 

풀무원에서 만든 플랜튜드라는 비건 식당은 좋았다. 간도 적당하고 담백하고. 코엑스가 아니고 다른 곳에 있었다면 자주 갔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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